PLAY UNCLEDEVELOPER STORY · 02 / 02게임으로 돌아가기 ↗

DEVELOPER STORY · PLAY UNCLE

출시하고 나니, 정답이 더 없어졌다

게임을 출시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졌다.

1편을 쓸 때만 해도

게임을 출시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만들어서 올렸으니 이제 사람들이 재미있게 해주겠지.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출시 전에는

“이게 완성될까?”가 고민이었다면,

출시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왜 나가지?”

가 고민이 됐다.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졌다.

게임을 켜긴 켰는데 왜 바로 껐을까.

한 판은 했는데 왜 두 번째 판은 안 했을까.

어제는 했는데 왜 오늘은 안 왔을까.

리뷰에는 재미있다고 써주셨는데

왜 플레이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까.

리뷰를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통계를 열면 다시 겸손해진다.

1인 개발자에게 가장 효과 좋은 감정조절 시스템이다.

01

내가 재미있으면 됐지, 가 아니었다

처음 이 게임은 꽤 냉정했다.

선을 잘못 밟으면 끝이었다.

어릴 때 하던 놀이도 그랬다.

선을 밟으면 진다.

규칙이 명확했고

그래서 긴장감도 있었다.

나는 그게 이 게임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조금 다른 장면이 보였다.

몇 분 동안 잘 달리다가

한 번 실수한다.

게임오버.

그리고 사람의 표정에 아주 짧은 순간이 온다.

“아.”

이 다음에 두 종류가 있다.

“한 번 더 해야지.”

그리고

“에이.”

두 번째가 생각보다 많았다.

문제는 게임이 어렵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몇 분 동안 쌓아온 걸 순간의 실수 한 번으로 잃었다는 느낌이 생각보다 컸다.

처음엔 보호막을 넣었다.

부활도 넣었다.

광고를 보면 다시 살아나는 방법도 넣었다.

살아날 방법을 계속 추가하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살아날 방법은 많아졌는데

사람이 게임을 끄는 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부활을 몇 번 줄까?’가 아니라

‘실수 한 번이 꼭 게임을 끝내야 하나?’

동네여행에서는 한동안 아예 게임오버를 없애기도 했다.

틀려도 다시 일어나서 달렸다.

스피드 모드도 실수했다고 판을 끝내는 대신

2초 동안 멈췄다가 다시 달리게 바꿨다.

지금 동네여행의 부적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실수를 없애주는 아이템이 아니라

그 실수가 이번 판의 끝이 되지 않게 해주는 보험에 가깝다.

처음 게임을 만들 때는

실수 = 실패

라는 공식이 아주 당연했다.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실수는 점수를 깎을 수도 있고,

시간을 잃게 할 수도 있고,

별을 놓치게 할 수도 있다.

꼭 플레이 자체를 끝낼 필요는 없다.

게임을 쉽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어려운 건 괜찮다.

그 어려움 때문에

“다시 해봐야지.”

가 나와야 한다.

“다시는 안 해야지.”

가 나오면 조금 곤란하다.

둘 사이가 아주 가까워서 문제다.

02

그런데 계속 달리게 했더니 그것도 힘들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 게임은 집중력을 꽤 많이 요구한다.

+1인지 +2인지 계속 보고,

다음 발판을 보고,

속도가 붙으면 손도 빨라져야 한다.

짧게 할 때는 이게 장점이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리뷰에서도

“잡념이 없어진다”,

“출퇴근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좋았다.

그런데 오래 하면 피곤하다.

나도 내가 만든 게임을 하다가

“잠깐만 쉬자.”

하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개발자가 먼저 지친다.

그래서 수업 모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본게임보다 더 어려운 걸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반대로

같은 게임 안에서 잠깐 호흡을 바꾸고 싶었다.

빠르게 판단하는 대신

한 판을 붙잡고 천천히 보는 것.

손가락 반사신경보다

조금 고민하는 것.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숫자 퍼즐을 만들었다.

발판의 숫자를 이어 목표 숫자를 만드는 식이었다.

처음 만들어놓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정답을 만들겠다고 규칙을 이것저것 붙였다.

여기는 못 갑니다.

이 숫자는 안 됩니다.

이 길은 틀렸습니다.

여기서 다시 하세요.

그러다 화면을 보니

휴식을 주려고 만든 퍼즐이

갑자기 시험감독을 하고 있었다.

“정답 아닙니다. 다시 푸세요.”

내 게임 안에 선생님이 한 명 생겼다.

그래서 다시 덜어냈다.

조금 틀려도 갈 수 있게 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쪽으로 바꿨다.

또 만들다가 재미가 없으면 갈아엎었다.

어느 날은 규칙을 만들고,

다음 날은 그 규칙을 삭제했다.

그다음 날은 삭제한 이유를 문서에 적었다.

혼자 개발하면 회의록을 쓸 필요가 없을 줄 알았는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의견이 달라서 필요했다.

03

출시 후 가장 많이 한 일은 ‘추가’가 아니라 ‘삭제’였다

처음에는 게임을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

계속 뭔가를 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넣었다.

보상을 알려주는 팝업.

새로운 기능을 알려주는 팝업.

출석.

우편.

오늘의 편지.

해금 안내.

게임 안에서도 설명.

게임 끝나고도 설명.

친절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비를 보는데

게임이 플레이어보다 더 바빴다.

접속하면

출석이 반기고,

우편이 반기고,

편지가 반기고,

새 기능이 반긴다.

조금 있으면 개발자도 튀어나와 인사할 기세였다.

그래서 하나씩 정리했다.

동시에 뜨지 않게 순서를 만들고,

이미 다른 곳에서 보여주는 설명은 지우고,

플레이 중 길을 가리는 알림도 없앴다.

버튼도 줄였다.

문장도 줄였다.

한동안 열심히 만든 기능을

통째로 버린 적도 있다.

하드 모드 체험판도 만들었다가 없앴다.

억지로 한번 시켜보는 대신

모드가 열렸다는 것만 알려주기로 했다.

로비 광장에 잔디를 깔았던 적도 있다.

처음엔 큰 잔디를 깔았다.

이상했다.

작은 잔디 여러 개로 바꿨다.

더 이상했다.

도로 양옆에만 깔아봤다.

역시 이상했다.

최종 해결책은

잔디를 없애는 것이었다.

몇 번의 커밋 끝에

처음 상태로 돌아왔다.

조금 허무했지만 예뻐졌다.

게임 개발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04

모든 길을 내가 정할 필요도 없었다

동네여행도 처음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1-1을 깨면 1-2.

그다음은 1-3.

개발자가 만든 길을

플레이어가 따라가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너무 당연했다.

내가 만든 게임이니까

내가 순서를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저맵을 만들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플레이어가 직접 코스를 만들고,

다른 사람이 그 코스를 달리고,

어떤 코스는 내가 만든 것보다 더 악랄했다.

참고로

유저들은 기믹을 주면 굉장히 창의적으로 사용한다.

개발자를 괴롭히는 방향으로.

그걸 보면서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규칙 안에서도

플레이어가 자기 놀이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생각을 동네여행에도 조금 가져왔다.

지금은 카드를 몇 장 받고

그중 어디로 갈지 고를 수 있다.

같은 스테이지라도

룰렛 결과에 따라 조건이 조금 달라진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돌릴 수도 있다.

이미 골랐는데 마음이 변하면

골드를 내고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

완전히 자유롭게 만든 건 아니다.

너무 랜덤하면 중요한 기믹을 영영 못 볼 수도 있어서

아직 경험하지 않은 특수 스테이지가 카드에 나오도록 보정도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길로 가.”

라고 정하는 것보다

“이 중에 어디로 갈래?”

라고 물어볼 만한 선택지를 만드는 쪽에 가까워졌다.

05

어느 날부터 게임에게 먼저 물어보게 했다

게임이 커지면서 또 문제가 생겼다.

할 게 많아졌다.

노말.

스피드.

하드.

동네여행.

유저맵.

수업.

산책.

처음에는 콘텐츠가 많아지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플레이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메뉴가 많다는 건 이런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뭘 해야 하지?”

개발자는 모든 버튼이 익숙하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플레이어는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오늘의 놀이’라는 걸 만들고 있다.

처음 기획은 아주 개발자답게 시작했다.

플레이어 데이터를 보고

가장 적당한 모드를 계산해서 추천한다.

훌륭하다.

똑똑하다.

그리고 재미가 없었다.

게임이 혼자 다 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게임이 먼저 물어본다.

“오늘 기분 어때?”

가볍게 하고 싶은지,

조금 도전하고 싶은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지.

대답하면 몇 판을 골라준다.

처음에는 하루에 세 코스까지 하게 했다.

많았다.

두 코스로 줄였다.

판과 판 사이도 처음에는 자동으로 넘어갔다.

빠르고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해보니

“어? 잠깐.”

하는 사이 다음 게임이었다.

그래서 다시 바꿨다.

다음에 뭘 할지 한 번 보여주고

플레이어가 눌러야 넘어간다.

결국 여기에서도 같은 결론으로 돌아왔다.

게임이 대신 결정해주는 게

항상 친절한 건 아니었다.

가끔은

기다려주는 게 더 친절했다.

06

1인 개발은 매일 어제의 나를 의심하는 일 같다

혼자 개발하면서 가장 힘든 건

일이 많다는 것만은 아니다.

기획도 해야 하고,

코드도 봐야 하고,

UI도 보고,

번역도 하고,

광고도 보고,

스토어 심사도 봐야 한다.

그것도 물론 힘들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힘든 건

결정하는 일이다.

누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 기능을 넣어야 하는지.

빼야 하는지.

게임이 너무 어려운지.

너무 쉬운지.

보상을 더 줘야 하는지.

지금 고치는 게 맞는지.

괜히 건드려서 더 망치는 건 아닌지.

밤에는

“이게 맞는 것 같다.”

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보면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을 때도 많다.

다행히 Git은 전부 기억하고 있다.

가끔은 기억력이 너무 좋다.

요즘은 Codex 같은 AI도 많이 활용한다.

처음에는

“이거 만들어줘.”

라고 많이 시켰다.

지금은 오히려

“내 생각이 틀렸다는 증거를 찾아줘.”

라고 시킬 때가 많다.

혼자 개발하면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항상 만장일치다.

참석자가 한 명이다.

그래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만든다.

코드를 다시 보고,

플레이를 다시 하고,

유저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보고,

내 가설이 틀렸다고 가정해본다.

피곤하다.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또 재미있다.

누군가 남긴 리뷰 한 줄을 보고

게임에 작은 기능을 하나 넣었는데

며칠 뒤 다른 사람이

그 부분을 정확히 알아봐 줄 때가 있다.

내가 며칠 고민해서 바꾼 흐름에서

플레이어가 예전보다 자연스럽게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걸 볼 때도 있다.

별거 아닌 버튼 하나를 옮겼는데

갑자기 화면이 훨씬 좋아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 아주 잠깐

“아, 이게 맞나 보다.”

싶다.

물론 다음 날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요즘은 그러려니 한다.

처음 게임을 만들 때는

완성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기능을 다 만들고,

버그를 다 고치고,

스토어에 올리면

완성.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게임을 출시한 순간

내가 혼자 만들던 게임은 끝났고,

그때부터는

플레이어와 같이 고치는 게임이 시작된 것 같다.

사람들은 말로만 의견을 주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도 의견이고,

한 판 하고 나가는 것도 의견이고,

같은 곳에서 계속 실수하는 것도 의견이다.

가끔은 리뷰보다

그게 더 정확하다.

그래서 계속 본다.

왜 여기서 나갔을까.

왜 이건 안 눌렀을까.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정말 재미있었을까.

매일 비슷한 질문을 한다.

스트레스도 꽤 받는다.

하지만 결국 다음 날 다시 프로젝트를 연다.

조금이라도 답을 찾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1편에서는

어제보다 한 칸 더 나아가기 위해

버튼을 누른다고 썼다.

지금도 비슷하다.

다만 출시 전에는

앞에 있는 발판만 보고 뛰었다면,

요즘은 한 번씩 주변도 본다.

내가 만든 길이 맞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아직 같이 달리고 있는지.

아직 정답은 모르겠다.

아마 계속 모를 것 같다.

그래도 오늘도 하나 고쳤고,

내일 또 하나 고칠 예정이다.

1인 개발은 어쩌면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음 답을 시험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FIRST STORY · 01퇴근 후,
나는 다시 출근했다